[스크랩] 또 린스만 바르고 출근했다
또 린스만 바르고 출근했다
-하태수-
머리를 감으려고 물을 묻히고서
더듬더듬 항상있던 샴푸통을 찾아서 꼭지를 눌러서 손에 받았다
찌-익 나오는 소리랑 손에 비비는 느낌이 다르다싶었는데 거품이 나질 않는다
우이-씨, 이거 또 린스잖아
급한 아침인데 그냥 헹구고 나올 수 밖에
똑같이 생겼어도 큰통이 샴푸고 작은통이 린스였었는데
항상 붙어있던 샴푸통 한 개는 어디로 가고 린스통만 있나그래
뭐 하나만 바뀌어도 적응을 못해서 헷갈리는 단순한 사람이다
계절따라 장롱이라도 뒤집어 놓으면 그거 적응하느라고 몇 일은 간다
양말통이라도 그대로 제자리에 뒀으면 좋겠다
엉망이어도 서랍정리는 안 했으면 좋겠다
면도기 날 한번 찾을려면 어찌 그리 복잡한 곳에 숨겨두는지
손톱깎기도 어떻게 안 물어보고 찾아 보려고 뒤지다가 결국은 물어본다
찾아주면서 낄낄대는 모습에 남자 존심 쭈그러들고
그 놈의 샴푸도 그래
뭔 종류가 그리도 많나 몰라
통은 하나만 사놓고 봉지에 든 걸로 채워서 쓰면 좀 좋아
그게 그거더라만 비듬이 어떻고 머릿결이 어떻고 하면서
사람 헷갈려 죽겠구만 맨날 바꿔치기야
그리고 대충 다 썼으면 버리던가 하지 물로 헹궈서 쓴다고
어쩔때는 샴푸가 아닌 물만 픽픽 나오고
그래놓고는 나더러 어찌 저리 하나밖에 모르는 단순한 사람이냐고?
이여자야
그래서 내가 한 여자랑만 20년이 넘게 살고있는 줄이나 알어
바꾸는 것 좋아하고 있네--
샴푸도 못하고 또 린스만 바르고 출근했더니
어이구, 머리 간지러워...
-2005년 4월 8일 하태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