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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마누라는 A/S 안 되나?

무랑이 2017. 6. 9. 11:55

 

 

분재 얘기 하나 더 --


집에서 분재를 서너개 기르고 있지만

분재에 대해서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마르지않게 물이나 자주 주고 보기좋게 이끼나 깔고서 기르는 정도인데

그중에 향나무 하나가 잎 색깔이랑 꼴새가 영 아니여서

경기도 이천에서 분재원을 하는 친구에게로 싣고 갔다

원래 향나무를 거기서 가져왔으니 어릴적 친정으로 데려간 것이고

말하자면 아프터서비스를 받으러 간 것이다



분갈이랑, 약도 쳐야되고, 영양상태도 봐야하니 맡겨놓고 가란다

일반 화분이나 난화분 같지않고 만지기가 조심스러운 것이 분재라서

전문가에게 회복되는 동안이라도 맡기고 올 수 밖에 없다

빈 자리가 허전할 거라면서 다른 향나무를 대신 가져 가란다

훨씬 좋아 보이고 밑둥도 더 굵다

전문가가 가꾼 것이니 싱싱하고 탱글탱글하니 그저 보기에도 시원스럽다

아주 바꿨으면 하는 욕심도 들고, 내 사랑을 확인시켜도 주고싶어서

집에 오자마자 4월3일 일요일이랑,

4월5일 식목일까지 휴일 이틀간을 매달려서 이끼깔고, 잎 다듬고, 받침대 맞추고

뿌리를 드러내서 밑둥이 웅장하니 보이게끔 칫솔로 흙 하나하나 닦아내고...

옛날 시골에서 쓰던 놋화로를 꺼내어 그 위에다 올려서

베란다 볕 잘 드는 곳에 놓고보니 거참 일품일세



헌 것 맡기고 새 것으로 맞으니 쌈빡하니 좋은데

저쪽 칙칙한 주방에 있는 마누라는 A/S 좀 안 되나?

맡겨서 옛날 처녀때처럼 탱탱하니 고치는 동안에 다른 여자로 바꿔와서...으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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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혹시

우리 딸을 데려간 녀석이 나한테 다시 와서 A/S 어쩌고 한다면?

이런, 싸가지...

달래고, 얼르고, 고장나면 내 돈들여 고쳐가면서 사는게 마누라여, 짜샤

A/S는... 뭔 놈의 그 딴게 다 있어

딸이 둘인데 장인도 그러지 않았냐고 사위녀석들 달겨들까봐 겁나서 마누라 A/S는 커녕

향나무도 얼른 다시 가져 올란다

분재나무 좀 맡겼다가, 거 별 소리를 다 듣겠네



안 그래도 내 딸래미같은 향나무라서 궁금해 전화를 해 볼까하다가

분재원은 요즘이 제일 바쁜 철이라서 문자로만 보냈다

『2년을 키우면서 정든 식구인데 병들어 맡긴 나무가 보고 싶다

대신 가져온 것은 이쁘게 돌려 줄께』



주말인데 오래된 마누라들 얼르고, 달래고, 수리하면서 잘 보내렴

A/S 좋아하다가 A/S 당하지말고...


-2005년 4월 9일 하태수-

출처 : 진도 3,9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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