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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만남 20주년을 맞은 아내에게-

무랑이 2017. 5. 19. 12:02

머리말 : 연애시절 나누던 밀어나 글은
남이 들으면 유치할수록 본인들은 진지한 내용입니다
짜증나게 닭살일수록 당사자들은 더 감동입니다
가족카페에만 올릴까 하다가 적습니다



만남 20주년을 맞은 아내에게-

천방지축 설쳐대던 나와
항상 정장만을 고집하며 다소곳하던 당신과는
지금 생각해보니 참 대조적인 만남이었습니다
많이 닮아가고 있고 서로 편해지는 방법을 배워가면서
그렇게 벌써 20년입니다

청주시내 무심천변을 걷는 것도 좋았고
서청주에서 나눈 짜릿한 첫 키스도 잊지 못할 추억입니다

사랑의 색깔이 있다면 세 가지가 있을 듯 합니다
신호등 색깔로 비유해서
가장 강렬하게 뇌리에서 오래도록 남는 색이 노랑색으로
부모님과의 사랑입니다
색이 바뀔 때마다 순간순간 짧지만 강하게 나타났다가 금새 사라져 주지요
파랑색은 순수와 편안함을 뜻하는 우정의 색깔입니다
빨강색은 열정으로 불타던 우리 둘의 사랑을 뜻할 것입니다
당신이 맏이로서, 난 외아들로서
각자 책임감을 얘기하며 가족만의 색깔로도 버거워할 때
세 가지 색으로 비유하며 어느 한곳에 치우치지 않는 신호등처럼
제 역할을 골고루 하면서도 사랑할 수 있음을 설명했던 게 생각납니다
신호등 색깔 잘 지키며 날 믿고 따라 주어
오늘이 있으니 기쁨입니다

당신과 나는 다르면서도 닮은 것이 많습니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늦은 공부도 그렇고
둘 다 아버지에 대한 좋고 나쁜 기억도 별로 없이 사별해서
어머니에 관한 한 맹목적인 사랑도 그렇고
그런 어머니를 비슷한 시기에 급하게 떠나 보내야 했던 안타까움도 닮았습니다
가족의 중심에서 힘겨운 구심점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잘 이겨냈습니다
앞으로도 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이 늘 상 만나는 갈림길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살아야 한다면
당신은 막내 대호를 보기로 결심한 일이겠지만
내 인생의 갈림길에서 가장 잘한 선택은 당신을 만난 일입니다
방황도 했고, 타락의 길목에서 겨우 헤어 나오기도 했고
그러던 중에 만난 사람이 당신입니다
당신을 만나면서 내 마음을 표현했던 글을 다시 적어 봅니다



◇ 미로(迷路)의 마지막 ◇

淑에게--

생(生)을 노래하고 싶습니다
굳어 메마른 입술을 적셔 주십시오

좀 철이 들고 싶습니다
잠을 깨이고
미로(迷路)의 마지막에서 불을 밝히십시오

발버둥치다 원점(原點)에서 지친 몸
당신의 소박한 젖가슴이 그립습니다

외줄기 서광(曙光)을 따라
방황(彷徨)을 밀치고
당신의 품속을 향해 갑니다

고독(孤獨)으로 멍든 곳을
뜨겁게
입맞춤해 주십시오

-1984년 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당신의 젖가슴은
늘 하품까지 달겨드는 포근한 안식입니다


결혼식을 한 날이야 인위적으로 우리가 정할 수 있지만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은 백겁을 헤아려 이루어지는 인연이기에
내게는 가장 소중한 기념일입니다

쪽지로 이렇게 썼던가요 “당신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 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 인생을 내게 모두 맡겨왔는데
어디 한 군데인들 곱지 않은 곳이 있으리요
부시시한 아침 잠자리의 모습도 좋고
때론 투정을 부려도 좋아만 보입니다

시댁식구들과 격의없이 잘 지내는 모습이랑
동네 또래 아줌마들이랑 친하게 어울려 다니는 것도 보기 좋고
부녀회 활동한다며 쏘다니는 것도 좋아 보입니다

베갯머리 사랑도 신혼 때 보다 더 좋습니다
20년째 팔베개한 어깨도 단련되었고
척하면 아는 눈치코치로 한껏 무르익은 사랑을 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샤워하는 소리에 아직도 가슴이 뛰며 좋으니
20년째인지, 20일째인지......후후....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이기를 원합니다
언제 그 샤워소리에 식은 땀 흘리며 등 돌아 잠든 체 할지 모를 일입니다
아직은 건장하다는 증거로 3일전에 받은 마라톤 완주메달을 목에 걸어드립니다

지금 난 뭘 더 얻겠다고 바둥대고 싶지 않을 만큼 다 가진 듯 합니다
바닥부터 시작한 내 인생이기에
곤두박질쳐봐야 거기가 원래 내 자리입니다
손에 것 다 놓쳐 봐야 원래 빈손이었으니 지금 것 모두가 덤입니다
쉬 만족하고 안주하려 할 때와 나태해지려 할 때는
가난했던 시절이 매서운 회초리로 답보하는 종아리를 칩니다
지금이 그럴지도 모릅니다

우리 인생 이제 정점을 지나가지만
10년이나, 더 멀리 보이는 노후라도 밝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지금을 즐기며 행복해 하면서도
시선만은 멀리, 그리고 높게 봅시다

20년 간 토닥거리기는 했지만 심하게 싸우지 않고 살아 온 것은
서로의 자리를 지켜주고 인정해 주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부부지간의 초석은 신뢰일 것입니다
믿음이 깨어지는 것은 반석이 깨어지는 것입니다
금이 가버린 유리잔은 사랑도 새고, 웃음도 새고
가정의 화목도 새어 나갑니다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한 우리 둘의 노력을 자찬합시다
축배라도 한 잔 해야지요

질투의 여신인 헤라의 혀 낼름거림이 아니라면
날 전적으로 믿고 화합하는 우리 식구와 당신이 있기에
나는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특이하게도 우리 둘의 징검다리가 되어주신 장모님이 지금도 계시다면
중매한번 잘 했노라 보람을 느끼며 기뻐하실 텐데 아쉽습니다
처음에는 당신보다 장모님이 좋아서 어머니처럼 따랐었지요
맺어주신 보답을 위해서라도 지금처럼 한결같음을 보여드립시다


사랑

결혼

마주 잡은 손

미소

한 방향으로의 시선

그리고 행복



낙서장에 미래를 생각하며 우리 모습을 그리던 단어들입니다
신기하게도 40대인 지금의 여유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연애시절에는 조금이라도 같이 있고 싶어서 안달이었지만
그런 마음과는 아랑곳하지 않고 가족들이 발목을 잡고 있어서
이런 심정의 글도 보냈지요



언제까지 우리 둘은 불붙는 눈길을 감추고

서로의 마음을 먼발치에 두어야 하는가


어느 무엇이 막는대도, 이제

하나를 선언하자



최선은 그대와 나

우리가 함께 사는 것



우리는 정말 어렵사리 하나가 되었고
지금은 하나 되었음이 행복입니다
결혼을 그리던 때를 생각하면 우리가 하나라는 사실이
맨 날 보면서도 우리 애들이 당신에게 매달리며 보채듯 좋습니다

내면까지 들여다 보면야 누구하나 근심없이 사는 사람 없을 것입니다
혹여 잘 안되어 가는 것이 있더라도 너무 집착하지 마세요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오늘에 충실합시다
결과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과정도 소중한 나날입니다

새 팔찌를 찬 아름에 꽃을 안겨 드립니다
스무 송이 장미꽃이 30송이, 40송이가 되고
계속 더 해지도록 노력합시다

사랑한다는 말 해본지 오래 되었네요
나하나 믿고 맡겨온 당신의 모든 것을
여전히 소중히 여기며, 사랑하렵니다

20년을 한결같이 내 곁을 지켜 준 고마운 사람
여보, 사랑합니다 !!

-2004년 5월 26일-
만남20주년을 기리며 남편이 씁니다.




꼬리말 : 이런 날을 계기로 옛날 주고받았던 글이랑 다시 펼쳐보니 새롭네요
5월은 내 주변을 돌아보는 가정의 달입니다
부모님, 남편, 아내, 자식.....
가족만큼은 꼽추여도 멋지고, 곰보여도 예쁘지요

보낸 편지만 옮겼습니다
받은 글은 정말 닭살이어서 뺐습니다
참고로 아내에게서 편지와 함께 선물도 받았는데
어차피 사야될 바지와 셔츠였습니다
애들에게는 학용품을 미리 사놨다가 생일 때 주더니.....

 

 

출처 : 진도 3,9고등학교
글쓴이 : 하태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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