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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누리야, 거짓말은 안된다

무랑이 2017. 5. 19. 14:24

누리야, 거짓말은 안된다


아빠가 어렸을 때의 어머니이신 네 할머니께서는
아빠에게 매를 들어보신 적이 한 번도 없으시다
네 두 고모님께도 마찬가지셨으니 자식들이 누가 잘하고 잘못하고를 떠나서 
아예 매 없이 키우신 것이다 
그렇게 자란 아빠랑 두 고모랑 모두 비뚤어지지 않고 올곧게 자랐고
많은 사랑을 받은 만큼 잔정도 많고 감성도 풍부한 이유가 
할머니의 사랑이라 생각하고 아빠는 그런 할머니를 늘 자랑스러워하며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아빠도 우리 애들에게 할머니처럼 그렇게 매 없이 대하고 싶었다
나리랑 대호도 꼬마 때 「맴매」정도로 매라는 것을 가르치며 들고는
미운 일곱살을 넘어서면서 거의 매를 들지 않았다
우리 애들 셋 모두가 특별히 말썽을 피우지도 않았거니와 
매를 들어야 할 만큼 얘기가 안 먹혀들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
누리 너에게 구두신는 막대기로 손바닥을 10여대나 때렸다
초등학교 6학년이니 말로 해도 다 알아들을 나이에
한 두 대도 아니고 “손바닥이 터지면 학교도 쉬고, 공부도 쉬라”면서 때린 이유가
거짓말을 엄마랑 아빠에게 했기 때문이다

주말농장에서 엄마아빠를 도와준 것이랑 
저녁에 같이 운동한 것이랑을 제외하면
토요일이랑 어제 일요일까지도 계속해서 TV체널만 돌리고 
아빠가 서너차례나 학교 갈 준비도 하고 공부도 하라고 했는데도
10여분 정도만에 “할 것 다 했다”며 또 컴퓨터 앞에 있었다
원래 네가 성격대로 화끈하게 공부도 하고 문제를 풀어도 빨리 풀고 해서
정말 그렇게 다 끝낸 줄 알았는데 엄마가 학습지를 확인해보니
목요일에 선생님이 집에 왔다가시고는 전혀 손도 안 대고 있었으면서 거짓말을 한 것이다
엄마가 나무라고 계시기에 기다리다가 끝난 후에 아빠가 다시 불러 세웠다

지금껏 엄마아빠중에 한 사람이 나무라면 한 사람은 냉정하게 중립을 지켜왔다
나무라는 걸 거들지도 않고 아이편에서 나무라는 사람에게 뭐라고 하지도 않았다
마지막에 기분을 풀어도 당사자들이 풀게끔 해 왔었다
지금처럼 엄마에게 혼났는데 아빠가 또 불러서 같은 일로 혼낸 것도 처음인 것 같다 

거짓말은 안 된다
폭력만큼 거짓말은 절대 안 된다
한번 거짓말을 해서 상대방이 속아 넘어가면 습관처럼 재미가 붙어 계속하게 되고
거짓말이라는 것은 언젠가는 알게 되어있고 
그러면서부터는 네 말을 한 번씩 의심하며 듣게 될 것이다
식구들간에도, 친구들간에도 네 말을 의심하거나 믿음이 깨어지면 끝장이다
옛 말에도 돈을 잃으면 조금 잃은 것이요 신용을 잃으면 많이 잃은 것이라고 했다
믿음과 신뢰와 신용은 유리잔과 같은 것이어서 
그 믿음에 금이가면 사랑도 새고, 웃음도 새고, 돈도 새고, 행복도 새고
모든 게 다 새어 나와서 못쓰게 되는 유리조각일 뿐이다 

여태 거짓말이라고는 모르며 지금까지 잘 자라왔는데 무슨 일일까
굳이 거짓말을 했다고까지 막판으로 몰아가고 싶지 않은 게 본심이다
일주일씩 공부하는 학습지이니 월요일에나 화요일에나 
다음 주에 선생님이 오실 때까지 하면 되는 공부고 숙제라고 생각한다면 
일요일에 아직 하지않은 공부를 지적하며 다 하지않고 다 했다고 하느냐고
엄마아빠가 성급하게 판단한 것이 아닌가도 생각 해 본다
그러나 학습지에 요일별로 해야하는 양이 정해져 있는데 
토요일과 일요일을 마냥 뒹굴고 아빠의 서너번의 경고까지 무시한 것까지 본다면
앞뒤 정황이 거짓말을 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저녁에 매를 들고는 속이 상해서 여러 가지 생각에 복잡한 마음이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했거늘
사랑의 매라도 아픈 기억만 남는다 했거늘
내 어머니에게서 매없이 자랐어도 홀어미자식이라는 말 듣지 않고 잘 자랐거늘
그런 어머니처럼 대하자 했거늘
저항하고 대들 힘이 없는 어린 아이들에게의 매질은 
어떤 이유에서건 정당화 될 수 없는 아빠의 나쁜 행동이었음을 인정한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네 엄마와 아빠는 
지금까지 20여년을 넘게 살면서도 손찌검은 고사하고
장난으로라도 어깨 툭툭 치면서 얘기 해 본 적이 없는데
부모로서 교육상이라는 명분없는 명분을 내세워서 너희들을 때리다니 안 될 말이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자고 있는 누리 방문을 열고 다가가서 
이불속에 있던 손바닥을 꺼내서 보니 아직도 벌겋게 보인다
누리도 잠을 깨서 아빠를 쳐다본다
아빠가 유난히 벌겋게 보이는 손바닥에다 후- 입김을 불면서 뽀뽀를 하고 
아빠 뺨에 누리 손바닥을 펴서 갖다 대었다
누리가 따라서 씽긋 웃는다
“아빠가 때린 것 미안해.  누리야, 거짓말은 안 된다”
누리가 고개를 끄떡인다
“아빠 출근한다. 갔다 올게”
“안녕히 다녀 오세요”
식구들이 동시에 같은 말을 했는데도 누리 목소리가 제일 밝고 크게 들린다
출근하는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내 딸 누리야, 
십년 후, 아니 20년도 더 후에 
너만한 자식을 둔 부모가 되어서 이 글을 읽어 보기 바란다
맛있는 것도 나보다 자식들이 오물거리며 먹을 때가 더 보기에 좋고
내 지갑의 돈을 내어 주는게 자식들을 위하는 것이라면 
받는 것보다 주는 게 기쁘단다
맞은 너만큼 매를 든 아빠의 마음도 풀리는데 몇 일씩 걸린다
셋 중에 유난히 직설적인 너랑은 미운 정도 그만큼 도탑고 
아빠와의 사연도 많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아빠의 매는 끝을 낼련다
거짓말은 절대 안되듯이 폭력 또한 절대로 안된다
아빠 마음으로는 벌써 사랑의 매마져 부러뜨렸지만 그것도 모자라서
네가 보는 앞에서 네 손바닥을 때렸던 매를 세동강이 나도록 부러뜨렸다
언니와 대호에게도 보이도록 했다
그리고는 내 딸을 힘차게 포옹했다

누리야,
매도 멀리하고 거짓과 불신도 멀리하고 서로의 마음을 많이 이야기하자
아빠도 네 얘기를 모두 다 많이많이 들어줄게
누리도 아빠랑 함께 노력해 보자꾸나
나는 이미 결심했다 지켜보렴
아빠는 널 믿는다, 누리도 아빠의 결심을 믿어 보렴
사랑한다

-2005년 5월 30일 아빠가 쓴다-

덧글-
내가 쓰는 글은 대부분 우리 식구들이 읽거나 검증을 마친 글입니다
우리 집은 가족끼리 같이 쓰고, 같이 보는 가족글 모음집이 집 컴퓨터에 있습니다
그 곳에다 아빠로서 썼던 글입니다
물론 내 딸도 아빠에게 답글을 썼지만 숙녀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공개할 수 없습니다
정작 당사자인 작은 딸은 담담하게 읽는데
큰 딸은 눈물을 찔끔거리며 읽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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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20일 하태수-

 

출처 : 진도 3,9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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