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찬 이야기/희망찬 글

[스크랩] 『제2회 mbc 한강 마라톤 대회』참가 후기

무랑이 2017. 6. 9. 11:21

--늦동이를 위하여 시작한 달리기--

마라톤대회라는 걸 참가해봤다.
쨍쨍하게 맑은 날씨와는 달리 마음은 복잡하고 긴장되었다.
동네 공원에서 경보하듯 3∼4km정도 뛰던게 전부인데 집식구들이야 알지만 실수로 인터넷에까지 참가사실을 알려놓고 완주하지 못하면 어쩌나?
가장으로서 끝까지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각오야 20대지만 몸은 40대 중반이 아닌가.

식구들은 대동하지 않고 지하철로 혼자서 터덜터덜 가방하나 메고 상암경기장에 도착했다.
무지하게 많이 모인게 일요일 늦잠자는 시각에 딴 세상을 보는 듯 하다.
코스가 10km짜리. 하프 코스 21.0975km 두가지인데 10km짜리를 신청해 놓고도 이렇게 걱정해서야 되나싶어서, 내 두배가 되는 하프코스 참가자들이 존경스러워 졌다.
평균적으로 뛰는 시간이 10km가 1시간, 20km가 2시간이라는데 1시간을 쉬지 않고 계속해서 뛸 수 있을까?

폭죽과 함께 출발점을 통과해서 바삐 앞서가는 사람들 다 보내가며 평소 뛰던데로 뛰었다. 5km지점을 지나면서부터 장딴지 근육이 뭉치듯이, 쥐나는 것처럼 땡겨오기 시작하는게 아킬레스건부터 장딴지 전체가 통째로 아파왔다.
숨차는 것은 참을만 하고, 5km지점 급수대에서 아예 물통을 하나 들고 뛰었더니 목 타는것도 괜찮았다.
7.5km지점 팻말을 보면서는 장딴지가 무감각해지고 허벅지까지 아파왔다.
신발끈을 너무 세게 맸는지 양쪽발 새끼 발가락이 물집이 생긴게 느껴졌다.
숨이 턱까지 찼지만 그냥 앞만 보고 내 페이스대로 뛰다보니 한두명씩 계속 추월할 수 있었다.
10km골인지점이 보이기 시작하자 힘이 더 생기고 걸음도 빨라졌다.
끝이 보이기 시작하면서도 골인지점까지는 지루하게 멀었다.
내 배 번호판에 붙은 전자칩이 골인지점을 전자파를 읽는 곳까지 뛰고 났는데 기록은 50분.
힘이 남아있었다.

뭐야? 마라톤은 이게 아닌데......
자기 체력은 완전히 한계에 이르고 정신력으로 뛰어야 마라톤 아닌가?
하프코스 주자들은 계속해서 골인지점을 옆으로 하고 더 뛰고 있는데, 10km를 완주하고 지쳐서 길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사람들 사이를 제치고 진행요원에게 더 뛰고 싶은데 하프코스 참가자들과 다시 더 뛰면 안되냐고 물었더니 "그만 뛰세요"란다.
그 옆에 다른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똑같은 대답뿐.
바리케이트를 쭉 쳐놓은 곳을 뛰어넘어서 진행요원이 소리치며 부르는 소리를 뒤로 하고 하프코스 주자들 쪽으로 가로질러서 뛰어갔다.
그래, 내가 지칠 때까지 뛰어보자.
정말로 다리가 오므라들던지, 숨이 턱까지 차서 멈춰 서던지 해야 내 한계를 알 수 있을게 아닌가?

군대 제대할때쯤 어느놈 덩치큰 녀석이랑 내 체력한계를 느끼며 한번 붙어서 누가 쓰러지던지 한놈이 쓰러질때까지 한번 싸워보고 싶었던 시절의 기분처럼,
뛰다가 꼬그라 질 때까지 한번 뛰어보자 생각하며 신이 났다.

12km를 지날 때 까지는 더 뛴게 잘했다 싶어서 좋았다가, 15km부터는 다리가 말을 듣지 않고 물집생긴 양쪽 새끼발가락이 쓰라리고 허벅지 근육까지 땡겨왔다.
처녀 출전하면서 무리하는게 아닌데 용기가 아닌 만용은 인간을 망친다는데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내 페이스를 유지하고 뛰다보니 나를 앞서는 사람보다 내가 계속 추월해 가는 사람이 더 많아 보였다.
잘 뛰는 사람들은 벌써 앞서가서 반환점을 돌아 옆을 스치며 반대로 가고 있으니 그럴만도 했다.

17.5km팻말을 보면서부터는 절룩거리는 사람, 걷는 사람, 옆길에 앉아있는 사람등 하나둘 낙오자가 보였다.
제일 먼 곳 반환점에서 전자칩에 기계로 기록을 하고 있었다.
머리도 멍하고, 다리도 그저 습관적으로 앞으로 발걸음을 움직이고 있을 뿐이였다.
발가락이 너무 쓰라려서 발바닥이 땅에 닿는게 충격이 되어 머리까지 아파 오고 숨은 턱까지 차서 마른 가래가 목구멍을 막는 듯 해서 체면이고 뭐고 뱉어내면서 호흡을 골랐다.

17.5km지점을 통과했는데도 그 다음 몇 km쯤이라는 표지판이 있는지 없는지, 눈에 보이지 않으니 더 막막하고 기운이 빠져서 그만 뛰고 싶었다.
그래, 이미 10km를 통과했고, 10km완주메달은 확보했는데 뭐가 그리 잘났다고 이 지랄을 떨면서 충분한 연습도 없이 하프코스까지 무리를 해서, 발가락이고 다리 근육이고를 혹사시키나 싶어서 그냥 그늘에서 누워버리고 싶었다.

정신까지 멍해왔다.
내 식구들이 생각났다.
내 나이 40에 늦동이 대호를 낳고 나서 즐거움 보다는 미안함이 앞섰었다.
내가 60살이면 아들은 이제 20살이 되는데 부모만 좋자고 늦동이를 낳아서 늙어서 까지 재롱만 보며 좋아하다가 막상 부모의 책임도 못하고 늙어버리면 부모로써 직무유기다.
큰애보다 10년 차이가 나는데 젊은 부모라는걸 모르고 늙은 부모가 되어 골골하는 몸뚱이를 막내에게 내 맡길 수는 없어서 그때부터 담배도 끊고, 동네학교 운동장을 슬슬 뛰면서 조깅을 시작한게 5년이 되었다.
노후대책으로 부동산 공부도 시작할 때는 엉덩이가 빵구 나서 수술을 두 번씩이나 하면서도 응시를 포기하지 않았던 나다.

주저앉는 모습은 보이기 싫다.
군대에서 완전군장중에 게거품을 물면서 쓰러진 놈들은 봤어도 지금 이런 정도에 포기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내가 힘들면 옆에 뛰는 이 인간들도 힘들 거다.
그래도 어느 무리에서든지 뒤 처지며 살지 않는다고 스스로 잘난 체 하던 나인데....
식구들 이름을 속으로 불러대며 그저 발걸음을 옮겨 놓았다.
걸음을 멈춰 버리면 더 지칠 것 같아서 그냥 앞만 보고 뛰었다.
표지판도 보이지 않고 오르막이 이어지는 지루한 길에서도 걷지 않고 슬슬 계속 뛰었다.

멀리서 골인지점인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지붕이 보이기 시작했다.
혹시 식구들이 골인지점에 깜짝스럽게 와서 아빠가 들어오기를 목을 빼며 있을지도 모른다는 황당한 상상을 하자 얼굴에 웃음이 띄워지며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오르막에서 걷는 사람들을 제치며 앞서 가는 기분도 괜찮았다.
체력이고 정신력이고도 없이 그냥 뛰었다.
가족들인지 많이도 와서 연도에 늘어서서 박수를 보내고, 자기 식구들이 오면 같이 뛰며 반기기도 하고, 카메라를 들이대고, 박수를 치고 난리였다.

골인지점을 통과했다.
10km때에도 통과했고, 다시 뛰어서 하프코스로 또 통과해서 두 번이나 통과한 셈이 되었다.
양쪽으로 가족들이 쭉 늘어선 곳을 혹시나 우리 식구들도 오지나 않았을까 두리번 거리며 공원끝까지 걸었지만 무리한 바램이었다.

주저앉으면 안 될것 같아서 계속 걸으며 전자칩을 반납하는 곳에서 진행요원에게 사실대로 두 번 뛰었다며 전자칩을 건네자 몇 가지 사실확인을 했다.
맨 끝에 반환점에서 전자칩을 확인했던 방법, 들어온 시각을 물었다.
10km때에는 50분, 하프코스때에는 1시간 57분이라고 했더니 웃으면서 하프코스 완주메달을 건네주었다.
목에 걸었다.
인터넷에 띄워준다기에 월계관을 쓰고 사진도 찍었다.

늦동이랑 건강한 모습으로 살고자 시작한 조깅이 하프마라톤 완주까지 왔다.
뭔가 하나 해냈다는 생각에, 막내 대호에게 나이든 아빠로서 조금은 강한 모습을 보여준 것 같은 스스로의 만족감에 울컥 가슴이 메어왔다.
하늘을 올려봤다.
처음 도전에 하프코스 완주로 받은 반짝이는 메달만큼이나,
홀가분해진 내 마음만큼이나 하늘은 높고 푸르렀다.
스타트 라인에서 본 똑같은 하늘이건만 완주하고 난 후의 하늘은 훨씬 더 높고 맑았다.

2003년 10월 26일 -하태수-

출처 : 진도 3,9고등학교
글쓴이 : 하태수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