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말--
큰아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육아일기를 엄마아빠가 번갈아 써서
두꺼운 노트로 한 권이 된다
작년에 처음 꺼내서 보여줬더니 고딩이 된 요즘도 책상맡에 놓고 읽고있다
그 중에 한 대목을 옮겨본다
1992년에 썼으니 13년전의 마음이 지금도 변함이 없는지 비교해 보고
가끔씩 가족을 위하여 그때그때의 마음을 정리하며 글쓰기를 하고 있는데
이렇게 나중에 보니 좋구나싶어서 게을리말자 다짐도 해 본다
다른 아빠들은 나와 다를까?
아빠의 의미
자식에 있어서 아빠의 의미란 무엇인가?
나는 잘 모른다
아빠에게서는 어떠한 사랑을 받고 그 받는 느낌은 어떠한가?
나는 잘 모른다
아빠와 자식간에 손을 잡고 공원을 거닐거나
새벽길 운동을 하거나
같이 장기를 두면서 한수만 물리자니 그렇게는 못한다거나 하는 모습이나
또는 무조건적으로 권위적이어서 무섭다거나 등등.
이 모든 것들이 내게는 TV드라마 속의 한 장면처럼
픽션소설의 한 장면처럼 그저 그런가 보다하는 느낌밖에는 들지 않는다.
아빠가 존경스럽다거나 서로 터놓고 속 얘기를 다 한다거나 하는 말을 들을때면
위선적인 듯 거부감을 느끼곤 했던게 사실이다
아버지 향년 37세
내 나이 다섯에 만4살
몇가지라도 기억을 더듬으려 해도 거의 생각나지 않는다
들려주는 얘기로는 내가 아버지의 장례행렬 뒤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재롱을 부려서 보는이로
하여금 더욱 안쓰럽게했다는 것 뿐
그로부터 내게는 아빠도, 아버지도 모두 허무한 단어가 되어
어릴때는 배고픔으로, 사춘기때는 열등감으로, 지금에 와서는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베풀어야
하는 심정으로 이렇게 어색한 사람을 만들고 있다.
왼팔이 없으면 오른팔이 더 세다던가
아버지가 없는 대신에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아버지에 대한 사랑까지도 포함되어 두 배로 느끼
며, 또 주고받으며 자랐다.
내게 있어서 어머니란 절대적인 존재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의 대상이었다.
어머니는 나의 천국이요,
고향이요,
마을 어귀의 작은 동산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아빠!”
나리 네가 처음 이런 말로 부를 때 낯선 단어 하나가 성큼 내게로 다가와 악수를 청하는 것 같아
머뭇거리듯 망설일 수 밖에 없었다.
나를 아빠라고 불르는데 아빠란 무엇인가?
아빠들이란 자식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내가 어렸을때나 사춘기때 받아보고 싶었던 그런 사랑을 베풀면 되는 것일까?
내가 중학교때 학교 납부금을 계속 밀려서 내지 못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종례가 끝나고 납부금을 못낸 몇 명이서 교무실로 불려가 학급별 납부금 실적을 나타낸 막대그
래프를 강제로 구경하고 나오다가 납부금을 냈기 때문에 자유로운 애들이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
며 놀고 있을 때 제일 부럽고 행복하다는 건 납부금을 걱정없이 내주는 아버지라는 사람이 있다
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 아빠라면 되는 것인가?
그래, 우선은 나리에게 내가 그런 아빠가 먼저 되어야 할 것 같다.
여유를 부리지는 못하더라도 아빠라는 사람은 열심히 일해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정도는 갖
추며 사는 가정을 가장으로서 먼저 이루어야 할 것 같다.
둘째는,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나라게 하기 위해서 내 어릴 때처럼 엄마
만의 사랑이 아닌, 그렇다고 아빠만의 사랑도 아닌, 양쪽 모두의 사랑이 균등하면서도 넘치듯 풍
부한 사랑을 베풀어 주고 싶다.
내가 자라면서 받지 못해서 남겨 두었던 것과 베풀고 싶었지만 베풀지 못했던
그 터질 듯이 넘치는 사랑을 네게 주고, 또 주고, 마구마구 주고 싶다.
셋째는, 내가 우선 네게 정직하고 싶다.
「진실한 마음과 성실한 행동」을 네게 몸으로 가르치는 아빠이고 싶다.
지금 네가 세살.
궁금한게 뭐가 그리도 많은지 “이게 뭐야?” “아빠 뭐야?”를 물어볼 때면
“몰라도 돼” 라거나 “그런게 있어”로 대답하고 싶지 않다.
대답을 몇 퍼센트만 알아 들을 수 있어도 내막을 자세히 얘기해 주고싶다.
내 딸 나리야,
아빠는 나중에 네가 내게 ‘위대하지는 않았지만 정직하고 성실했다.’는 얘기를 듣고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진실이란, 거짓으로 간단히 감추기보다 모든 것을 내보이려는 용기가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넷째는, 대화하는 아빠이고 싶다.
우리의 대화야 네가 엄마 뱃솔에서 2개월째일 때 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굳이 이 글을 육아일기로만 한정시키고 싶지 않다.
세상살아가는 얘기와 아빠가 네게 해주고 싶은 얘기를 쓰는 편지라고 해도 좋고 대화의 장이라
고 해도 좋다.
지금도 나리 너는 재롱으로 내게 얘기 하고 있고
나는 네게 답변하듯이 이 글로 네게 얘기를 하고 있다.
네가 이제 학교를 다니고, 친구들을 사귀고, 사춘기를 겪고, 인생의 고락을 체험 할 때라도 같이
얘기를 하고 싶다.
난 솔직 담백하게 얘기를 주고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때가서 너무 세대차이를 느끼게 되는게 걱정이지만 신세대에 대해서도 공부해야지.
그래도 내가 너무 고리타분한 노인네가 되었다면 넌 이 노트를 읽으면서 아빠를 이해할수 있도
록 하고 아빠는 지금 쓰는 이런 육아일기 글로 너와 얘기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이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나리와 엄마와 아빠가 같이 살아가는 동반자로서의 아빠가 되
는 것이다.
나리 너에게까지도 보란듯이 엄마와 아빠가 행복하게 살며 그 삶에 네가 같이 동반자가 되어 살
게끔 할 것이다.
획일선을 그어놓고 그 선만을 따라서 걷게하고 이탈할 때마다 채찍을 휘두르는 목동이 아니라
같은 삶을 영위하는 인격체로 대하고 싶다.
아빠란 양육자만도 아니요, 교육자만도 아니고,
한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함께 살아가는 서로간의 인격체중의 하나일 것이다.
아빠는 아빠대로, 엄마와 나리는 또 엄마와 나리대로 각자의 역할과 책임을 다 함으로해서 가정
이 기쁨을 창조하는곳, 추억을 만들어 가는 곳, 예술같은 삶을 엮어 가는 가정이요, 부모요, 아빠
이고 싶은 것이다.
아빠의 의미란 무었일까?
자식으로서의 아빠라는 의미가 내게는 못느꼈던 것을 내 딸 나리는 어떻게 느끼게 될까?
나리에 대한 아빠의 의미는 무엇일까?
나리라는 딸을 둔 아빠로서의 의미는 또 무엇일까?
새롭고 처음이지만, 느끼며 부비며 그 의미를 만들어 가 보자꾸나
깊은 밤이다.
지금 나리는 엄마 옆에서 엉덩이를 하늘 높게 올리고 엎어져서 자고 있다.
아빠라는 내가
저리 귀여운 내 딸을 잠이 깨이도록 힘껏 품에 안아보고 싶은 그런 밤이다.
- 1992년 1월 2일 나리가 세살 때 아빠가 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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