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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식탁에서의 내 버릇

무랑이 2017. 6. 9. 12:06

식탁에서의 내 버릇



밥 숟가락 놓기가 무섭게 난 식탁에서 일어난다

덜 조리된 음식이랑을 준비하던 아내는 절반도 못 먹었을 때도 그렇다

애들이 어릴때는 먹여주고 가시도 발라주고 하느라고 더 늦었었다

뻔히 아내는 한참 식사중인데도 매정히 일어설 때면

참 미안하다



난 밥통이 작은가 보다

어머니가 그랬는데 나도 그런가

배꼽시계도 고장이다

어느정도 때가 지나면 배가 고프고

또 어느정도 먹으면 배가 불러야 하는데

그런 배꼽 계기판이 고장이어서 감각이 없다

먹을게 앞에 있으면 계속 집어 먹게되고

목까지 찰랑찰랑 하게 차면 그때는 배가 아파오면서

소화제 없냐 체했는지 따 주라 난리다



그러니 내 양을 다 먹었다싶으면 곧장 일어 선다

딴 집 가서 뭘 먹어도 먼저 내 양을 정해 놓고 먹어야 한다

내가 처음에 시작한 식사량이 어느정도인지를

미리서 가늠해 놓고서 먹어야 뒤 탈이 없다



술도 그렇다

한도가 한 병이라면 미리서 1병을 내 몫으로 해 놔야 마신 양을 아는데

마냥 주고 받고 돌리고 하다보면 얼마나 마신줄을 모르다가

내 양을 오버해서 식탁에 머리박고 잔 적도 있다



몇 번이야, 나도

식탁에 같이 앉아서 아내가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도 봤었다

젓가락에 금새 손이 가고 이것저것 집어 먹고서

위로 다시 넘쳐 나올 것 같아서 혼났다

다른 것에는 자제력이 있다고 생각하고 식탐이 센 것도 아닌데

그저 앞에 먹을 것을 놓고는 계기판이 말을 듣지 않으니

브레이크없이 계속 집어 넣는게 문제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내 정량 먹고는 곧바로 일어서는 수 밖에

늦게 퇴근해서 혼자 먹을 때는 빤히 바라보면서 자리를 같이 해 주는데

양해를 구했다지만 미안스럽다



세상에서 길들여지는 것이란 없다는게 지론이다

소 멍에 자욱이 뭉쳐져 있는 것은 길들여진 것이 아니라

아파하며 멍울져 있을 뿐, 쉬면 풀리는 응어리이다

나는 내 밥만 먹고 일어나면 되는 사람이고

아내는 혼자서 먹는 걸로 길들여졌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다



그렇게 혼자서 먹을 때에는 불만스런 응어리가 쌓이고 있을터인데

어찌 할거나


-2004년 9월 11일 하태수-

 

출처 : 진도 3,9고등학교
글쓴이 : 하태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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